삶의 역경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관계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을 때, 추진하던 일이 자꾸만 실패로 돌아갈 때, 바래왔던 꿈이 수포로 돌아가고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 때. 이제 여기까지인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인지 스스로의 방식에 대해 의구심이 들고 달려가던 발의 기운이 빠져갈 때가 있다. 그때도 걸음이 어딘가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을 보고 아직 끝이 아니구나.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패를 눈앞에서 마주하기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짙은 좌절의 냄새가 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다. 설령 수천만 번을 연달아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잘해볼 수 있다는 꿈이 있으며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 낸다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인생이란 길을 걸어가다 벽을 마주해서도 언제나 손에 다음을 향한 카드가 들려 있다는 것이, 다른 방법으로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 실제의 희망이다. 우리는 실패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다는 것에 쓰러지게 된다. 그 때문에 언제나 방법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상 나의 인생이 바뀌었던 것도 방법을 개발하며 세상을 그려내는 사람이 된 이유 덕분이다. 거기서 우리는 용기를 찾고 다시 힘을 내서 기운차게 삶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새로워지지 않고 기존에 머무른다면 실패의 축축한 향기를 맡으며 공허하고 초라한 꿈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생을 바꾸길 원한다면 거주하는 세계 전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세계란 현실조차 꿈이기에 스스로의 꿈을 바꾸어 원하는 꿈 속에 빠져들어야 한다. 원하는 꾸고 싶은 꿈 안에서 새로운 방법과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금 해야할 일이 되어지며 온 세상과 함께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한두 개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손본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것을 대체할 완전히 새로운 꿈을 설립하는 것이 우선이며 기나긴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야기에 관해서는 너무 많이 말하여 다른 주제를 말하는 것이 낫겠다. 

자신이 머무르는 세계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생의 용기를 되찾을 수 있다. 많은 것을 시도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을 수 있다. 그럼에도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발걸음을 보아라. 연흔이라는 방식으로 흔적이 남게 원하는 꿈을 향해 노력해 나갈 수 있다. 수험생이라면 한 권의 문제집을 너무 완벽하게 푸느라 계속 붙드는 것보다 책을 한 권씩 풀어가는 것으로 걸어왔으며 걸어가고 있는 발걸음을 실체로 만들어 인식하는 것이다. 글쓰기가 그런 점에서 뛰어난 효용을 보이는데 글로 채운 수첩의 갯수가 한 권씩 늘어나고 웹에 업로드한 포스팅의 페이지로 지나온 흔적이 확인되며 나아가는 발걸음은 지금 쓰는 글로 알게 되는 것이다. 힘이라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을 늘려가는 본질이 있으며 해야할 일을 다하는 속성을 보인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해야할 일을 다하며 진정한 최선으로 세상을 열어가며 진실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의구심을 느낄 뿐이지만 우리들은 세상을 변화시켜 간다. 사람들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지도 않지만 우리들은 해야할 일을 다하고 있다. 언제나 현상이 원하는 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화살이 쏟아져도 쏠 수 있는 화살을 계속해서 발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 홀로가 아니다. 힘의 세계에서 힘이란 힘을 지닌 존재들이 공유하며 함께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때때로 힘을 지닌 존재들과 의견이 달라 대립할 때가 있지만 우리들은 힘을 가지는 것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이다. 비록 세계 자체는 각주별성으로 공유되지 않지만 서로의 힘이 동일하며 길은 다르지만 방향성은 같기에. 우리라는 꿈을 꾸며 멀지만 이곳에 있는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곳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격외되어 있는 혼계 속마을에서 힘을 지닌 영원한 존재들과 함께 지내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 많은 아픔이 있지만 결국에 그들을 아프게 하는 것으로 내 발밑에 둘 수 있다. 세상의 거짓된 현상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파멸에도 더욱 강한 힘으로 향해가면서 말이다.

Posted by 검은투구
,




헤어진 연인들 중 많은 수가 서로를 싫증내고 지겨워하며 떠나간다. 좋은 점이 있어서 만났을 텐데 끝은 그다지 안 좋아야만 하는 것일까? 이별이 다가오기 전부터 미리 이별을 준비하지 않아서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살며 연애도 아무 생각 없이 만나다가 현상적으로 이별을 맞이해서 관계를 파멸시키며 해선 안 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한때는 많이 사랑했던 님이 점이 찍혀버려 남이 되고 사실상 전 여자친구, 전 남자친구라는 관계가 있어 남은 아니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다. 비가 내리는 날 택시를 빨리 타려는 여자친구를 보고 가슴이 찢어진다는 내용을 노래하는데 영화 속 한 장면 같지만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도망치듯 황급히 떠나는 전 이성친구의 뒷모습에 가슴 아파한 기억은 사회적으로 일상적인 경험이다. 드물지 않다 수준도 아니고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한다. 연애도 인생 전체를 잘 살아가는 사람만이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무릇 큰 사람만이 큰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표현되는 이것은 반대로 자그만 사람은 어떻게 해도 커다란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연애를 잘 한다는 것은 관계를 잘 유지한다는 뜻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관계가 70% 정도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반대로 연애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울 가득한 인생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만큼 암울한 생이라는 뜻이다. 확률적으로 매번 나의 연인만 이상한 또라이 사이코가 걸릴 이유는 없다. 다들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사회의 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학교도 다녔고 직장도 있고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는 맺어가는 보통의 사람들이 많은데 관계가 자꾸 꼬이는 것은 그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무지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서로를 욕할 것이 아니라 세상 자체가 원래 잘못되게 사는 인간들이 많은 탓이다. 우리의 부모들조차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 그들의 부모에게 완벽하지 않은 교육을 받아 부족한 채로 할 수 있는 대로 그 나름을 최선을 다한 어쩌면 불쌍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살아간 이들이 있고 우리의 다음에도 누군가가 살아가며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갈 것이다. 어렵게 사는 이들이 많은 것은 우리의 시대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이후에도 그럴 수도 있다. 물론 내가 그러지 않도록 만들고 있으며 이 세상을 바꿔낼 것이다. 사람들은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많이들 아파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관계란 언제든 이어지고 끊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녀와 만나기 전에는 그녀 역시 모르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다시 모르는 많은 이들 중 하나가 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별을 슬퍼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교육된 감정이다. 여자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빈도가 높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통계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우울증을 겪는 숫자가 두 배에서 세 배가량 높게 추출된다. 남자는 둔감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남성 역시 세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우울해하면 주변에서 위로도 해 주고 여자들이 우울함을 경험할 수 있다고 용인되는 분위기이지만 남자들은 무슨 남자가 삐지고 그러냐고, 사소한 일은 술 한잔 마시고 넘어가라는 분위기라 남자들도 여자라면 우울하다고 말할 일 정도는 기분이 안 좋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통계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별은 그다지 슬프지 않을 수도 있고 슬프지 않으려 들 수도 있는데 헤어지고 나서 술을 마시면서 슬퍼하면 주변에서 위로도 해 주고 많이 사랑했다보다 말하며 나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그 때문에 이별 후에 그토록 슬퍼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사회적 세뇌에 인해 교육된 감정이라는 점을 알면 헤어지고 나서 바로 다른 여자를 만날 수도 있고 전혀 슬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해야할 일을 하고 따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지 않을 수 있어야 맞다. 이별택시 같이 슬픈 노래를 들으며 괜히 날씨도 좋은 날에 밖에도 안 나가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빨리 다른 여자친구, 남자친구도 사귀고 하고 싶은 목표들을 향해 달려가며 재밌고 즐겁게 인생을 지내라고 권한다. 

우리의 사후에도 존재 느낌이란 게 남을 수 있고 또 다른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나 일반인의 세계와는 무관한 일이며 힘을 가진 세계에서도 지금의 세상을 지내는 인간이라는 개체는 흔적조차 없이 소멸되며 기억도 남지 않는다. 죽음이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 불리며 한번 죽은 이는 사진이나 영상, 또는 기억이나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듯이 자신이 죽으면 다른 이들이 자신을 볼 수 없게 되며 지내던 기존의 세상은 태어나기 전처럼 소멸되기에 지금의 생을 사실은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저 다음과 다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생이다. 우리는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고 어떤 것에도 속할 수 있다. 그리고 하고 싶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존재한다. 지나간 인연에 매달리는 것은 대부분 하면 안 되는 일에 해당한다. 관계라는 규정에 매일 필요도 없이 인생을 지내는 것은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어야 맞다. 또한 우리는 사람을 보기보다 커다란 꿈을 바라봐야 한다. 그때 세상을 비로소 잘 살아가게 되며 진실을 만나게 된다. 

사람을 바라보는 한 초라하고 공허한 꿈만이 기다릴 뿐이다. 현실 또한 현실이라는 꿈을 꾸는 것이며 우리는 현계를 내계로서 꿈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며 지나치게 연인을 그리며 슬퍼하는 것은 손에 아무 것도 남지 않고 그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도 못하고 다른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지도 못하는 끔찍한 꿈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그러지 않고 잘 살아가야 하며 그것을 통해서만 지난 인연에게라도 괜찮은 추억을 남기거나 아픈 상처와 사랑이란 달콤쌉싸름한 감정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노래를 통해서 슬픔을 증가시키고 지금의 세상은 TV나 영화, 노래 등으로 하면 안 되는 일 역시 하도록 유도하며 이별 택시란 노래도 듣기에는 좋으나 가사에는 불필요하게 과한 슬픔이 담겨 있다. 그런 것을 명확히 판단하고 걸러낼 줄 알아야 하며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안 할 수 있어야 맞다.


Posted by 검은투구
,

아무래도 이미지 삽입은 어려운 것 같다. 간만에 시간이 나서 시도를 해봤는데 보안 사항에 걸린다는 메세지가 떴다. 네이버에 이미지라는 검색어를 쳐서 한 여자가 초록색 페인트 벽 앞에서 뒤를 돌아보는 사진을 올리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세상이란 현상이 있다면 그곳에는 힘이란 신이 있다고 힘은 비유된다. 현상은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며 다음 주에 앞바다로 소풍을 가자며 연인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서 커피집을 나서는데 10톤 짜리 화물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며 그렇듯 미예측이며 미통제인 것이 현상이다. 다만 정확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하고 싶은 꿈을 향해 달려가며 건강하게 살아가기 어렵기에 인간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상을 통제 가능하다고 믿으며 지내고 효율면에서 뛰어나기에 합리적인 접근이 된다. 이것을 이해하기 쉬운 비유가 있다. 인생이란 상영 중인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데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막 재미있게 웃으며 얘기하다가 갑자기 스위치가 꺼지고 더이상 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일반인들의 경우에 그렇고 경지가 높아지면 다른 일이 벌어진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블로그에선 시간이 지난 이후에 하는 것이 맞다. 죽음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다르게 다가오는 세상은 미통제와 미예측에서 마찬가지가 된다. 하지만 에너지가 변하는 흐름으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힘이 발생하여 현상을 통제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현명한 이는 서리가 내리는 것을 보고 겨울이 다가옴을 짐작하고 강한 힘이 발생하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바다를 가를 수 있다. 물론 서리가 내려도 겨울이 한참 뒤에 올 수도 있으며 힘이 발생해서 바다가 쪼개지긴 해도 계획한 대로 되진 않을 수 있다. 어디까지 어느 정도 가능한 영역이 되며 흐름의 에너지가 크게 증가할 수록 미래를 예측하는 범위가 늘어나며 힘이 강해질 수록 현상을 원하는 대로 통제하게 된다. 이를테면 기업을 운영하다가 자금의 융통이 어려워지는 것은 흔한 일인데 여러 은행을 활용해서 빚을 돌려막다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면 그 회사의 주식가치는 대개 떨어진다. 사람들도 해당 기업이 부도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나서도 직원들이 파업을 계속하고 제품 판매의 실적이 부진하고 경영진이 그들의 뒷돈을 챙기기에 바쁘다면 회사가 망할 흐름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결국 회사가 부도나고 사람들이 직장을 잃는 최종적 현상이 일어나기까지 흐름을 예측하게 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그것을 인식하여 알맞은 해결을 일으키는 것으로 회사가 운영하고 영업하는 활동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궤도에 올릴 수 있다. 또는 회사가 망하더라도 사람들이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대비하는 측면에서 미래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미래란 별자리나 책에 적힌 점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수험생이 공부를 안하고 매일 게임만 하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파악되는 인과 관계를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상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누구나 잘 풀릴 때는 빠르게 달려갈 수 있으나 세상에서 역경이 주어질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로 다음의 현상이 달라질 수 있다. 시도하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고 직장에서도 해고당하고 관계하는 사람들이 하면 안되는 일을 자행하며 서로를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잘 할 것을 믿어주고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고 벌어진 사건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견지를 지속하는 것으로 좋지 않은 흐름을 돌려내어 원하는 밝은 현상이 일어나도록 바꿀 수 있다. 이것을 비유한 것이 끝없이 쏟아지는 화살이다. 세상에서 수많은 화살이 그칠 줄 모르고 쏘아진다해도 자신의 화살을 계속해서 쏠 수 있어야 한다. 해야할 일을 다하는 것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힘이 강해질 수록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어진다. 힘을 가진 무애자의 공통적인 인생 체감이 있다.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쓰러진다는 것으로 세상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사람들을 지켜내는 것이 나 하나 뿐이라는 느낌과 같다. 예전에 봤던 TV 만화영화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말하는 대사가 나온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리."

다른 이들은 도망치기에 바쁘고 내가 전부 처리해서 그들을 지켜낼 책임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무애자는 세상의 책임자이자 세상의 구원자와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해야할 일의 기준은 힘을 가져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서 방황하며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평생을 인생의 답을 찾는데 세월을 허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해진 답이라는 것이 없고 개척해 나갈 길만이 존재할 수 있는데 그것은 힘이 발생해서 가능한 것이다. 무애자가 어떤 일에도 미혹이 없는 것은 무엇을 해야하고 어떤 것을 하면 안 되는지의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야할 일은 모두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힘이 없는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데 원래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다 여기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다른 이들을 좋아할 수 있는 것,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포기란 없이 해결의 노력을 계속하고 새로운 방법을 하루에도 수십 개씩 꺼내어 드는 것, 아무리 힘든 세월이 오래 지속되어도 방법을 만들어 해결하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해결 뒤에는 또다른 해결이 있으며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끝없이 해결해야 한다. 그것을 두고 견지라고 부른다. 

아무리 서로를 사랑해도 무지하다면 관계는 파멸할 뿐이고 다시는 보지 못할 사이가 되어버린다. 예전에는 관계를 파멸해서 못 볼 사이가 되어버려 꽤나 슬픔이 가득한 생을 지냈다면 힘을 가진 이후에는 모든 것을 해결하고 수많은 방법을 꺼내는데도 세상이란 것이 생각한 대로는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커다란 슬픔을 지녔었다. 그것이 힘이 있다만 약한 정도일 때 느껴지는 체감이다. 힘은 크기와 무관하게 가진 것만으로 해야할 일을 다하는 것이기에 생이 진실해진다. 미사일을 장착하면 도시 하나를 부술 수도 있겠지만 나무 막대기를 든 채로도 최선의 공방을 펼치게 하는 것이 힘이다. 힘은 현상과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것이라 미통제와 미예측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흐름은 있지만 흐름이 어우러지는 것이 무작위인 현상과 달리 더 강한 힘으로 나아가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으며 그것이 힘의 본질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려 한다. 힘이 발생하는 것은 더욱 강해지려는 것 뿐이며 그러한 의미가 있기에 신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 이외에 약해진다거나 더 강해지지 않는 활동으로는 발생하지 않는다. 힘이 약해지는 것을 막는다는 식으로 힘이 발생하는 것은 없는데 힘이 발생하는 것으로 힘이 더 강해지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힘은 더 강한 힘으로 나아가는 방향 뿐이다. 무애자의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예시를 떠올려 보라. 수많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잘 되기 위해 앞에 놓인 미래의 과제와 이전 과거의 숙제(이것은 모두 지금에 속한 것이다. 세상에는 시간의 개념이 없고 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발생할 뿐이기 때문이고 세간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대체해 설명하기 위해 지금이라고 표현할 뿐이다. 원래는 발생이라고 불러야 맞다.), 그리고 지금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하고 사람들이 관계를 털며 하면 안 되는 행동으로 파멸을 일으켜도 언제까지고 해야할 일을 다하며 구원을 견지드는데도 세상이 변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파멸의 현상이 발생한다면 그때 커다란 슬픔을 느끼게 된다. 해도 해도 그다지 바뀌지 않고 계속 해결할 것이지만 다음과 다음에도 변화된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데도 생각처럼은 잘 되지 않을 때 힘을 가진 세계에 슬픔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힘들어하고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어디로 가야할 지 알고 있으므로 세상의 방향을 전환하려 시도하지만 마음처럼 되지만은 않는다. 그럴 때 큰 슬픔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끝없는 해결을 이어가는 것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며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힘의 단계가 높아지면 분노가 발생한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두려움 등은 힘이 발생하여 현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로서 힘의 크기를 짐작하게 만든다.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일정한 정도의 힘과 닿으면 색이 변하는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크기를 알게 한다. 

분노는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만든다. 힘이 커져서 현상을 지배하여 통제해낼 때, 저들이 그래선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을 힘으로 돌려내면서 분노가 일어난다. 그렇다고 무작정 화를 내는 것은 아니고 감정을 필요에 따라 사용한다는 원리가 들어 있다. 스스로 경험되는 감정적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두려움은 거대한 힘을 가져서 세상을 완전히 뜻대로 통제하고 있는 자신의 세계에 발생되는 힘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 정도에 이르면 판타지 수준의 일도 할 수 있게 되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인연이 닿는 이에게 전할 내용이다. 슬픔은 해야할 일을 언제까지나 다 하며 해결의 시도를 계속한다는 것을 뜻하며 분노는 세상을 직접 바꿔낼 수 있고, 바꿔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려움은 거대한 힘으로 세상을 아예 반토막 낼 수도 있고 쪼개고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라 힘이 있다는 자체로 두려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강한 힘이 발생할 때 경험되는 것으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항상 발생하지는 않는다. 힘이 있다는 데는 두 가지 다른 의미가 들어 있다. 동음이의어처럼 같은 어구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는 강한 힘을 가져서 그만한 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은 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축약한 표현이다. 위의 경우에서 힘이 있다는 것은 강한 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강한 힘이 발생하여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으로, 직접 힘이 나타나지 않을 때도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10kg의 아령을 한 팔로 들 수 있지만 언제나 아령을 들어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듯 힘은 할 수 있는 것을 뜻하며 증명할 대상은 아니다. 더 강한 힘으로 나아가는 것은 힘이 발생하여 할 수 있는 걸 늘린다는 뜻이며 직접 모든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어야 하는 않는다. 이는 간단히 이해가 가능한 논리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힘이 발생하여 분노를 경험하는 단계를 지났고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더욱 힘이 강해지면 목과 등골을 타고 흐르는 소름이 느껴질 것이다만 아직 힘이 두렵다는 체감 정도에 그치는 수준에 있다. 그러나 강한 분노로 모든 것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체감은 든 지 꽤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조립하고 창조하여 세상을 완전히 바꿔낼 것이다. 분노는 그렇게 할 수 있으며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분노가 두려움으로 단계가 올라설 때, 이미 대부분의 것이 바뀌었으며 손가락을 드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쓰러뜨리는 수준에 이르르게 된다. 그 날이 언제쯤 올지를 기대하고 있다.

Posted by 검은투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