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잉여롭게 지내는 삶에 대해 대단히 관심이 높아졌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구르기 때문이겠지.

지속적으로 개입이 들어와서 귀찮고 피곤한 때가 많이 있다. 아무려면 전역하고 낚시나 하러 다니고 싶다고 말하겠는가? 우리는 많은 일을 수행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씻고 잠을 잔다. 나의 경우에는 배로 출근해서 선임들 비위를 맞추고 물 가져오라면 갖다주고 밥 해오라면 밥 해오고 장전한다면 탄약 싣고 양묘기 갈라면 갈고 기름칠하라면 걍 귀찮아서 후임 시키고 그런다. 사람들은 내가 일하니까 진짜 내가 하는 것인줄 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우리는 움직인다. 정말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아무 것도 안 한다면 어떻게 될까? 언젠가는 발이 움직여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데이트 약속을 잡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움직이는 자유를 경험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기다릴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선임들이 주로 그러하듯이, 10분 정도 뒤에. 아니면 때가 되었을 때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왜 빨리 안 하는거냐며 흐름을 끊고 재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분에 청소를 시작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15분 쯤까지 도착해서 앉아있지 않으면 무척이나 불안해한다. 쓸데 없지만 일찍 와서 청소하기 전에 기다리고 있어야 안심하는 것이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면 지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말하는 '일하는 시늉'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인데 전혀 쓸모 없으며 시간 낭비인데다 불필요한 것이다. 하루 종일 보이지 않다가 일할 시간이 되어 나타나서 처리하고 가면 족하다. 그것을 두고 더 일찍 오라느니 하는 것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다. 발전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가만히 있으라고 시키는 꼴이기에. 그들은 남에게 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도 독촉한다. 지금은 말을 걸지 않고 있지만 언제 할지는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지 않고 있다고 정말 아무 것도 안 할 것처럼 불안해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계속 움직이도록 채찍질해야만 다리를 들어서 가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간다. 설령 말을 걸지 않고 멀어졌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움직인다. 그들은 세상이 시키는 것만을 한다. 노예이기에. 시키는 것을 지키지 않으면 큰일날 것처럼 굴고 말하는 대로 했는데 왜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느냐며 항의한다. 그러나 노예들이 너무 많아서 배분될 자원이 없으며 안 줘도 저항하지도 못하는 노예에 불과해서 안 줘도 되기에 주지 않는 것이다. 그냥 노예니까.

밥을 한 숟갈 주더라도 죽이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신세인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지시하는 것을 안 해도 된다. 그것은 쉽게 잡아먹을 먹잇감에 불과하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할 수도 있다. 세상을 잡아먹을 수 있어야 아무 것도 안 하는 듯 보이는 일에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다. 정말 안 할 수도 있다.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다.

얼마든지 기다리는 여유로움과 함께 세상을 지배하는 그릇의 크기가 있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움직이는 자발동공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직접 발을 들어야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귀찮겠는가? 사실 이 철학도 세상 사는 것이 너무도 귀찮아서 수월하게 하려고 파고드는 것이다. 군대에서는 3km 달리기를 하는데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노력해서 달리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달리고 있는 흐름이 계속해서 달리게 만드는 것이다. 어느 순간 멈추게 되는지도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때가 되면 멈추게 된다. 자발동공이 되는 사람은 웬만해선 중간에 멈추는 일이 없다. 정말 체력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가 되어서나 달리는 속도를 늦춘다. 물론 때에 따라서 중요하지 않을 때는 누구보다 천천히 달리는 일도 가능하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달릴 준비를 하거나 옷을 갖춰 입거나 부대로 출근하는 등으로 해온 일이 있다. 그것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노력하지 않아도 6시 15분의 기상 방송 소리 이후에 20분이 되면 생활관 앞에 집합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하지 않는다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회사도 안 나가고 수업에도 빠지는 식으로 퍼질러져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이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는 자발동공에 대한 이야기니까.

처음에 사부님에게 이 철학을 들었을 때 그다지 경지가 높은 내용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인가.

힘을 가진 지금에 와서는 자발동공이 일어나는 경지가 상당히 고레벨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인들은 우연히 경험되거나 극소수의 최상 근기를 가진 이가 아니라면 평생토록 겪기 어려운 현상이다. 부대에서는 시스템부터가 잘못되어 자꾸 일하는 시늉을 하라 시키고 다른 이들을 불신한다. 증명의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에. 증명의 문화가 무엇인지 아는가? 한번 연구해보길 바란다. 왜 사람들은 실수를 두고 재미있게 웃지 못하는가? 다른 이들이 한 것에도, 자신이 벌인 실수에도.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사는데 인생이 한 번 뿐이고 그마저 짧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그들은 한 열 번 정도 다시 살 수 있는가본데 인생이란 그저 즐겁고 재미나게 잘 지내면 될 뿐이다. 마음껏 사랑하고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하면서.

인생을 잘 표현한 한 가지 문구가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스스로와 싸우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면 족하다. 인생에는 대단한 의미도 없고 잘 사는 동안 저절로 의미가 생겨나는 것이다. 기름기를 쫙 빼고 가볍게 살면 된다. 누구나 어려운 점과 모르는 점이 있고 얼마든지 용인되는 것인데 잘하기를 어려워하고 모르는 것이 있다거나 실패를 저지르면 사람들은 비웃는다. "그것도 못하고 말이야.."

대신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실수는 일종의 실패이다. 실수를 얼마든지 용인해야만 무한한 시도가 가능하고 우리는 지금보다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연구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한다고 주제를 말한다.

열심히 해서 자발동공의 경지까지 경험해보길 바란다. 이 글을 혹시라도 접하는 사람 중에 일부라도 겪게 된다면 그만한 보람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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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역경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관계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을 때, 추진하던 일이 자꾸만 실패로 돌아갈 때, 바래왔던 꿈이 수포로 돌아가고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 때. 이제 여기까지인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인지 스스로의 방식에 대해 의구심이 들고 달려가던 발의 기운이 빠져갈 때가 있다. 그때도 걸음이 어딘가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을 보고 아직 끝이 아니구나.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패를 눈앞에서 마주하기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짙은 좌절의 냄새가 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다. 설령 수천만 번을 연달아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잘해볼 수 있다는 꿈이 있으며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 낸다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인생이란 길을 걸어가다 벽을 마주해서도 언제나 손에 다음을 향한 카드가 들려 있다는 것이, 다른 방법으로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 실제의 희망이다. 우리는 실패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다는 것에 쓰러지게 된다. 그 때문에 언제나 방법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상 나의 인생이 바뀌었던 것도 방법을 개발하며 세상을 그려내는 사람이 된 이유 덕분이다. 거기서 우리는 용기를 찾고 다시 힘을 내서 기운차게 삶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새로워지지 않고 기존에 머무른다면 실패의 축축한 향기를 맡으며 공허하고 초라한 꿈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생을 바꾸길 원한다면 거주하는 세계 전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세계란 현실조차 꿈이기에 스스로의 꿈을 바꾸어 원하는 꿈 속에 빠져들어야 한다. 원하는 꾸고 싶은 꿈 안에서 새로운 방법과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금 해야할 일이 되어지며 온 세상과 함께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한두 개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손본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것을 대체할 완전히 새로운 꿈을 설립하는 것이 우선이며 기나긴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야기에 관해서는 너무 많이 말하여 다른 주제를 말하는 것이 낫겠다. 

자신이 머무르는 세계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생의 용기를 되찾을 수 있다. 많은 것을 시도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을 수 있다. 그럼에도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발걸음을 보아라. 연흔이라는 방식으로 흔적이 남게 원하는 꿈을 향해 노력해 나갈 수 있다. 수험생이라면 한 권의 문제집을 너무 완벽하게 푸느라 계속 붙드는 것보다 책을 한 권씩 풀어가는 것으로 걸어왔으며 걸어가고 있는 발걸음을 실체로 만들어 인식하는 것이다. 글쓰기가 그런 점에서 뛰어난 효용을 보이는데 글로 채운 수첩의 갯수가 한 권씩 늘어나고 웹에 업로드한 포스팅의 페이지로 지나온 흔적이 확인되며 나아가는 발걸음은 지금 쓰는 글로 알게 되는 것이다. 힘이라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을 늘려가는 본질이 있으며 해야할 일을 다하는 속성을 보인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해야할 일을 다하며 진정한 최선으로 세상을 열어가며 진실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의구심을 느낄 뿐이지만 우리들은 세상을 변화시켜 간다. 사람들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지도 않지만 우리들은 해야할 일을 다하고 있다. 언제나 현상이 원하는 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을 화살이 쏟아져도 쏠 수 있는 화살을 계속해서 발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 홀로가 아니다. 힘의 세계에서 힘이란 힘을 지닌 존재들이 공유하며 함께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때때로 힘을 지닌 존재들과 의견이 달라 대립할 때가 있지만 우리들은 힘을 가지는 것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이다. 비록 세계 자체는 각주별성으로 공유되지 않지만 서로의 힘이 동일하며 길은 다르지만 방향성은 같기에. 우리라는 꿈을 꾸며 멀지만 이곳에 있는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곳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격외되어 있는 혼계 속마을에서 힘을 지닌 영원한 존재들과 함께 지내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 많은 아픔이 있지만 결국에 그들을 아프게 하는 것으로 내 발밑에 둘 수 있다. 세상의 거짓된 현상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파멸에도 더욱 강한 힘으로 향해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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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미지 삽입은 어려운 것 같다. 간만에 시간이 나서 시도를 해봤는데 보안 사항에 걸린다는 메세지가 떴다. 네이버에 이미지라는 검색어를 쳐서 한 여자가 초록색 페인트 벽 앞에서 뒤를 돌아보는 사진을 올리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세상이란 현상이 있다면 그곳에는 힘이란 신이 있다고 힘은 비유된다. 현상은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며 다음 주에 앞바다로 소풍을 가자며 연인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서 커피집을 나서는데 10톤 짜리 화물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며 그렇듯 미예측이며 미통제인 것이 현상이다. 다만 정확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하고 싶은 꿈을 향해 달려가며 건강하게 살아가기 어렵기에 인간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상을 통제 가능하다고 믿으며 지내고 효율면에서 뛰어나기에 합리적인 접근이 된다. 이것을 이해하기 쉬운 비유가 있다. 인생이란 상영 중인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데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막 재미있게 웃으며 얘기하다가 갑자기 스위치가 꺼지고 더이상 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일반인들의 경우에 그렇고 경지가 높아지면 다른 일이 벌어진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블로그에선 시간이 지난 이후에 하는 것이 맞다. 죽음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다르게 다가오는 세상은 미통제와 미예측에서 마찬가지가 된다. 하지만 에너지가 변하는 흐름으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힘이 발생하여 현상을 통제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현명한 이는 서리가 내리는 것을 보고 겨울이 다가옴을 짐작하고 강한 힘이 발생하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바다를 가를 수 있다. 물론 서리가 내려도 겨울이 한참 뒤에 올 수도 있으며 힘이 발생해서 바다가 쪼개지긴 해도 계획한 대로 되진 않을 수 있다. 어디까지 어느 정도 가능한 영역이 되며 흐름의 에너지가 크게 증가할 수록 미래를 예측하는 범위가 늘어나며 힘이 강해질 수록 현상을 원하는 대로 통제하게 된다. 이를테면 기업을 운영하다가 자금의 융통이 어려워지는 것은 흔한 일인데 여러 은행을 활용해서 빚을 돌려막다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면 그 회사의 주식가치는 대개 떨어진다. 사람들도 해당 기업이 부도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나서도 직원들이 파업을 계속하고 제품 판매의 실적이 부진하고 경영진이 그들의 뒷돈을 챙기기에 바쁘다면 회사가 망할 흐름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결국 회사가 부도나고 사람들이 직장을 잃는 최종적 현상이 일어나기까지 흐름을 예측하게 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그것을 인식하여 알맞은 해결을 일으키는 것으로 회사가 운영하고 영업하는 활동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궤도에 올릴 수 있다. 또는 회사가 망하더라도 사람들이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대비하는 측면에서 미래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미래란 별자리나 책에 적힌 점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수험생이 공부를 안하고 매일 게임만 하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파악되는 인과 관계를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상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누구나 잘 풀릴 때는 빠르게 달려갈 수 있으나 세상에서 역경이 주어질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로 다음의 현상이 달라질 수 있다. 시도하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고 직장에서도 해고당하고 관계하는 사람들이 하면 안되는 일을 자행하며 서로를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잘 할 것을 믿어주고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고 벌어진 사건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견지를 지속하는 것으로 좋지 않은 흐름을 돌려내어 원하는 밝은 현상이 일어나도록 바꿀 수 있다. 이것을 비유한 것이 끝없이 쏟아지는 화살이다. 세상에서 수많은 화살이 그칠 줄 모르고 쏘아진다해도 자신의 화살을 계속해서 쏠 수 있어야 한다. 해야할 일을 다하는 것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힘이 강해질 수록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어진다. 힘을 가진 무애자의 공통적인 인생 체감이 있다.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쓰러진다는 것으로 세상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사람들을 지켜내는 것이 나 하나 뿐이라는 느낌과 같다. 예전에 봤던 TV 만화영화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말하는 대사가 나온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리."

다른 이들은 도망치기에 바쁘고 내가 전부 처리해서 그들을 지켜낼 책임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무애자는 세상의 책임자이자 세상의 구원자와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해야할 일의 기준은 힘을 가져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서 방황하며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평생을 인생의 답을 찾는데 세월을 허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해진 답이라는 것이 없고 개척해 나갈 길만이 존재할 수 있는데 그것은 힘이 발생해서 가능한 것이다. 무애자가 어떤 일에도 미혹이 없는 것은 무엇을 해야하고 어떤 것을 하면 안 되는지의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야할 일은 모두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힘이 없는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데 원래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다 여기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다른 이들을 좋아할 수 있는 것,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포기란 없이 해결의 노력을 계속하고 새로운 방법을 하루에도 수십 개씩 꺼내어 드는 것, 아무리 힘든 세월이 오래 지속되어도 방법을 만들어 해결하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해결 뒤에는 또다른 해결이 있으며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끝없이 해결해야 한다. 그것을 두고 견지라고 부른다. 

아무리 서로를 사랑해도 무지하다면 관계는 파멸할 뿐이고 다시는 보지 못할 사이가 되어버린다. 예전에는 관계를 파멸해서 못 볼 사이가 되어버려 꽤나 슬픔이 가득한 생을 지냈다면 힘을 가진 이후에는 모든 것을 해결하고 수많은 방법을 꺼내는데도 세상이란 것이 생각한 대로는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커다란 슬픔을 지녔었다. 그것이 힘이 있다만 약한 정도일 때 느껴지는 체감이다. 힘은 크기와 무관하게 가진 것만으로 해야할 일을 다하는 것이기에 생이 진실해진다. 미사일을 장착하면 도시 하나를 부술 수도 있겠지만 나무 막대기를 든 채로도 최선의 공방을 펼치게 하는 것이 힘이다. 힘은 현상과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것이라 미통제와 미예측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흐름은 있지만 흐름이 어우러지는 것이 무작위인 현상과 달리 더 강한 힘으로 나아가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으며 그것이 힘의 본질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려 한다. 힘이 발생하는 것은 더욱 강해지려는 것 뿐이며 그러한 의미가 있기에 신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 이외에 약해진다거나 더 강해지지 않는 활동으로는 발생하지 않는다. 힘이 약해지는 것을 막는다는 식으로 힘이 발생하는 것은 없는데 힘이 발생하는 것으로 힘이 더 강해지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힘은 더 강한 힘으로 나아가는 방향 뿐이다. 무애자의 슬픔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예시를 떠올려 보라. 수많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잘 되기 위해 앞에 놓인 미래의 과제와 이전 과거의 숙제(이것은 모두 지금에 속한 것이다. 세상에는 시간의 개념이 없고 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발생할 뿐이기 때문이고 세간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대체해 설명하기 위해 지금이라고 표현할 뿐이다. 원래는 발생이라고 불러야 맞다.), 그리고 지금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하고 사람들이 관계를 털며 하면 안 되는 행동으로 파멸을 일으켜도 언제까지고 해야할 일을 다하며 구원을 견지드는데도 세상이 변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파멸의 현상이 발생한다면 그때 커다란 슬픔을 느끼게 된다. 해도 해도 그다지 바뀌지 않고 계속 해결할 것이지만 다음과 다음에도 변화된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데도 생각처럼은 잘 되지 않을 때 힘을 가진 세계에 슬픔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힘들어하고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어디로 가야할 지 알고 있으므로 세상의 방향을 전환하려 시도하지만 마음처럼 되지만은 않는다. 그럴 때 큰 슬픔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끝없는 해결을 이어가는 것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며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힘의 단계가 높아지면 분노가 발생한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두려움 등은 힘이 발생하여 현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로서 힘의 크기를 짐작하게 만든다.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일정한 정도의 힘과 닿으면 색이 변하는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크기를 알게 한다. 

분노는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만든다. 힘이 커져서 현상을 지배하여 통제해낼 때, 저들이 그래선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을 힘으로 돌려내면서 분노가 일어난다. 그렇다고 무작정 화를 내는 것은 아니고 감정을 필요에 따라 사용한다는 원리가 들어 있다. 스스로 경험되는 감정적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두려움은 거대한 힘을 가져서 세상을 완전히 뜻대로 통제하고 있는 자신의 세계에 발생되는 힘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 정도에 이르면 판타지 수준의 일도 할 수 있게 되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인연이 닿는 이에게 전할 내용이다. 슬픔은 해야할 일을 언제까지나 다 하며 해결의 시도를 계속한다는 것을 뜻하며 분노는 세상을 직접 바꿔낼 수 있고, 바꿔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려움은 거대한 힘으로 세상을 아예 반토막 낼 수도 있고 쪼개고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라 힘이 있다는 자체로 두려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강한 힘이 발생할 때 경험되는 것으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항상 발생하지는 않는다. 힘이 있다는 데는 두 가지 다른 의미가 들어 있다. 동음이의어처럼 같은 어구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는 강한 힘을 가져서 그만한 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은 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축약한 표현이다. 위의 경우에서 힘이 있다는 것은 강한 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강한 힘이 발생하여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으로, 직접 힘이 나타나지 않을 때도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10kg의 아령을 한 팔로 들 수 있지만 언제나 아령을 들어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듯 힘은 할 수 있는 것을 뜻하며 증명할 대상은 아니다. 더 강한 힘으로 나아가는 것은 힘이 발생하여 할 수 있는 걸 늘린다는 뜻이며 직접 모든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어야 하는 않는다. 이는 간단히 이해가 가능한 논리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힘이 발생하여 분노를 경험하는 단계를 지났고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더욱 힘이 강해지면 목과 등골을 타고 흐르는 소름이 느껴질 것이다만 아직 힘이 두렵다는 체감 정도에 그치는 수준에 있다. 그러나 강한 분노로 모든 것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체감은 든 지 꽤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조립하고 창조하여 세상을 완전히 바꿔낼 것이다. 분노는 그렇게 할 수 있으며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분노가 두려움으로 단계가 올라설 때, 이미 대부분의 것이 바뀌었으며 손가락을 드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쓰러뜨리는 수준에 이르르게 된다. 그 날이 언제쯤 올지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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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에서 군인 냄새가 짬냄새처럼 지워지지 않고 나는 것은 아직 입대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일병 짬찌이기 때문일 것이다ㅠㅠ 동아리의 동생에게 동기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는데 자주 못만나는게 그렇단 이유로 까이고 말았다. 어차피 내 여자를 소개받는 것은 아니라 상관은 없다. 부대의 일정상 상당히 바빠서, 그리고 다음으로 향할 연결성이 부족해서 블로그를 연 지 일주일만에야 잉여로운 포스팅 하나를 쓴다. 이미지를 업로드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안다. 아마 용량 제한이 있을텐데 몇 킬로바이트 수준이라 웹에 올리기도 부족한 용량이다. 

다음으로 향할 연결성이란 것은 컴퓨터를 자주 쓰지 못하기에 글을 길게 이어쓰기 어려운 연유이다. 나는 상당히 많은 글을 쓰는데 맘에 드는 주제로는 몇 달간 지속해서 글을 써내곤 한다. 그러나 사지방 피시는 기껏해야 한 두 시간 사용할 뿐이고 그것도 정박 기간의 주말에 한정된다. 깊은 철학적 사유를 논하기도, 재미난 일상을 풍부하게 전하기도 짧은 시간이다. 

글을 쓰는 주제는 주로 '힘'에 대한 것이다. 부대에서는 학문을 전하는 것이 상황상 어렵다. 계급이 워낙 중시되는 곳이며 또한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이기에 여기는 현상적으로 뛰어나게 지내는 인간이 많아서 힘을 가지기에는 그들의 그릇이 모자라다. 일반적으로 뛰어난 현상을 경험하는 이들은 그릇 자체는 작은 케이스가 많다. 내가 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기에 가끔 연구 주제에 관한 질문을 던질 때가 있는데 설명해주기가 껄끄럽다. 나의 철학은 '힘'이라는 대주제 아래 모든 것이 설명되는데 상류의 원천은 상당히 위험한 주제여서 이곳에서 꺼내진 않고 있기에 다른 철학을 꺼내어도 불충분한 설명이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집중된 주제를 깊이 파고들기에 여기서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부족하다. 어쨌든 안할 만하기에 강의를 하고 있지는 않다. 

부대에서 블로그를 시작해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쁜 일이다. 외부 세상과 웹으로나마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기쁘다. 군대는 아무래도 고립된 섬처럼 갑갑한 면이 있다. 최근의 유행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TV를 안 보기에 다른 사람들이 틀어놓은 소리만 듣게 되어 밖에서 어떤 소식이 있는지만 대략 알 뿐이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이번 글은 결론도 없고 내용도 끄적인 수준이다만 여기서 마치겠다. 

어차피 이 블로그로 당장 큰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것도 아니기에 언제든 좋은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을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는데 웹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고 여기서 내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점이 너무나 행복하고 좋다. 이 기분을 다른 이들은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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